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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2002년 16부작 정치드라마, 시작은 항상 그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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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편집자주‘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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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에서 대선 후보 경선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를 꼽으라면 2002년 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전국 16개 시도를 돌아가며 국민의 손으로 대선 후보를 뽑아갔던 49일간의 대장정은 그 자체로 역사다.


한국 정당 사상 최초로 도입했던 국민참여경선은 말 그대로 대흥행이었다.
지역마다 TV로 중계됐던 경선 결과는 대선에 대한 열기를 증폭시켰고, 선거의 흥미를 더했다.
이른바 16부작 정치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2002년 3월16일 광주 지역경선이었다.


호남의 쟁쟁한 후보들에 맞서 국민 선거혁명을 준비했던 부산 출신 노무현 후보의 선전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2002년 대선은 그날의 승부가 결정지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광주 시민들이 부산 정치인을 선택한 그 순간, 민주당의 대선 동력은 증폭됐고 12월 대선 승리의 토대가 됐다.


2002년 대선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정치인 노무현이다.
하지만 2002년 국민참여경선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주연만큼이나 빛났던 조연이 등장한다.
16부작 정치 드라마를 완성한 그 인물에 대한 얘기다.


2002년 3월16일 광주 전당대회 결과도 그 사람이 발표했다.
그가 “개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기호 2번 노무현 후보 득표수 595표, 득표율 37.9%…”라고 개표 결과를 전하자 체육관에 모여 있던 선거인단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노무현 후보가 광주에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후보는 당시 “광주시민 여러분들의 위대한 승리, 한국 민주주의 승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2002년 4월27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최종 결과를 알리는 서울 전당대회에서도 모두의 숨을 죽이도록 한 이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입에서 선거 결과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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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인단대회 최종 누계 결과를 발표하겠다.
기호 2번 노무현 후보 1만7577표, 득표율 72.2%…노무현 후보가 당선됐음을 선포합니다.


국민참여경선의 중요한 순간마다 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모든 이의 시선을 모으게 했던 그 사회자의 이름은 ‘정치인 김영배’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는 동명 이인이다.


정치인 김영배는 193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인물로 국회 부의장까지 지냈다.
1978년 제10대 총선에서 신민당 후보로 국회의원이 된 이후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 양천구을 지역구에서 승리할 때까지 6선을 역임한 중진 정치인이다.


평화민주당 사무총장, 민주당 사무총장 등 당과 국회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담도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정치인 김영배는 2013년 4월27일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흘렀다.
동교동계 원로이자 6선 의원으로서 수많은 정치 현장에 있었던 그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일까.


그를 기억하는 이에게 의견을 구한다면 2002년 국민참여경선 당시 개표 결과를 발표하던 ‘당 선거관리위원장 김영배’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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