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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와 폐세자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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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슈어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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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世子)는 현 임금의 아들로 차기 왕위를 이을 선택받은 사람을 뜻한다.
폐(廢)세자란 그처럼 고귀한 지위에 있던 세자가 무슨 이유에선지 왕위 계승권을 잃고 내쳐지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조선시대에 동생 충녕대군(훗날의 세종)보다 못하다는 이유로 아버지 태종한테 버림을 받은 장남 양녕대군, 그리고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결국 아버지 영조의 명령으로 뒤주에 갇혀 숨진 사도세자가 대표적 사례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서 물러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아들들 또한 예외없이 폐세자의 운명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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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계조당(繼照堂)의 모습. 조선시대 세종 임금 시절 세자의 집무 공간으로 쓸 목적에서 건립됐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됐으나 2023년 9월 복원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500여년 조선 왕조가 무너지고 생겨난 공화국 대한민국에 왕조 시대에나 쓰일 법한 세자와 폐세자라는 용어가 소환됐다.
4·10 총선이 여당인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난 뒤 홍준표 대구시장이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폐세자’에 비유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홍 시장은 “황태자가 자기 주군에게 대들다가 폐세자가 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임금(윤석열 대통령)을 배신한 세자(한 전 비대위원장)에게 더는 정치적 미래가 없을 것이란 의미다.
오는 2027년 3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한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 대권 주자로 재기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홍 시장 발언을 놓고 찬반 양론이 거세게 일었으나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왜 한 전 위원장에게 세자라는 딱지를 붙였는가 하는 점이다.
배신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한 전 위원장이 차기 대권 주자처럼 행세했던가. 홍 시장 눈에는 그렇게 보였음이 분명하다.
서울 강남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엘리트 코스를 걸은 한 전 위원장의 이력에서 세자까진 아니어도 귀공자 이미지가 묻어나는 건 분명하다.
다만 세자라고 부르려면 현재 정권 ‘2인자’이거나, 아니면 차기 대권을 보장받았거나 둘 중 하나는 있어야 할 텐데 과연 그럴까. 폐세자란 표현은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정치적 경험이나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 전 위원장을 놓고 세자 운운하는 것 자체가 그를 너무 띄워주는 듯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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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에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문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와중에 또 다른 세자가 구설에 올랐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채용되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은 정황이 드러난 전직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장관급)의 아들을 선관위 직원들이 ‘세자’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달 30일 이같은 내용의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검찰에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인사 27명의 수사를 의뢰했다.
아버지가 장관급 공무원이란 이유만으로 그 아들이 세자로 통하는 세태가 우스운 동시에 슬프다.
선관위 직원들 중에는 정말 세자처럼 받들어 모신 이도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영향력만 믿고 거들먹거리는 그런 세자라면 조선시대와 같이 즉각 폐세자함이 마땅할 것이다.
선거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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