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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글로벌 기업의 투자 붐은 한국 기업들에는 기회이자 위협이 되고 있다. 글로벌 수요와 투자가 폭발하면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전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하는 국내 기업들은 비상이 아닐 수 없다. 국내 기업들도 포스트 팬데믹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이에 맞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 환경은 기업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올해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있는 것은 향후 소비가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4월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에서 증가한 저축액이 5조4000억달러라며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완화되면 소비가 폭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월가에서는 기업 투자 전망이 지금처럼 장밋빛이었던 적이 없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포함된 기업이 분기 실적을 발표할 때 경영진의 자본지출 계획에 대한 발언 내용을 분석했다. BOA는 2006년 이후 발언 내용을 분석한 결과 올해처럼 경영진이 자본지출에 강력한 확신을 보였던 적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5개 S&P500 비금융 회사의 자본지출 규모에 대한 기대치가 지난 1년간 10%가량 올랐다고 설명했다. S&P500에 속한 기업은 세계 기업 자본지출의 7분의 1을 차지한다. 이들의 자본지출이 세계 자본지출의 기준이 된다.
컨설팅업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자본재 수요가 급증하면서 올해 기업 자본지출이 강력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글로벌 실질 고정자산 투자가 6% 이상 늘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 투자는 정보기술(IT)과 소비재 관련 기업들 중심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로 언택트에 기반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됐기 때문이다. 원격 근무 등에 적합한 새로운 IT 장비와 소트프웨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코노미스트가 자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올해 IT 기업 자본지출이 코로나19 이전이었던 2019년에 비해 42% 늘 것으로 예상했다. 애플은 향후 4년간 미국에 4300억달러(약 476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기존 계획보다 투자 규모를 20% 늘렸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업체인 대만의 TSMC는 향후 3년간 1000억달러(약 111조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가 지난해 자본지출을 45% 늘린 데 이어 올해도 13% 늘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의 올해 1분기 자본지출도 전년 동기 대비 36% 급증했다. 타깃과 월마트 등 유통업체들은 온라인을 통한 소비가 늘면서 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서둘러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 기업 투자가 폭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대응이 늦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에서 500대 기업의 올해 투자계획을 분석한 결과 주요 기업의 58%가 아직 투자계획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축소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도체 등 확실한 성장이 기대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투자 기회를 놓치기 않기 위한 기업들의 자금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최근 한풀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ㆍSPAC)를 기반으로 한 기업공개(IPO) 시장은 올해 역대 최고 호황을 보이고 있다.
회사채 발행도 활발하다. 중앙은행의 경기부양 기조 덕분에 낮은 금리에 자금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등급 미국 기업의 올해 채권 발행 규모는 1조7000억달러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이었던 2019년 1조1000억달러와 비교해도 크게 늘었다.
전환사채(CB) 발행 규모도 역대 최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달 26일까지 올해 들어 미국 97개 기업이 543억달러어치의 CB를 발행했다. 발행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 늘어 역대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CB는 주가가 올라야 프리미엄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기업 주가와 경기에 대한 투자자들의 낙관적 전망을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이 CB를 발행했다면 올해는 인수합병, 투자, 자사주 매입 등의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CB 발행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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