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신군부 비자금과 관련해 정치권의 대응이 빨라지고 있다.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은 범죄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를 골자로 한 형법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이미 고인이 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몰수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신군부의 불법 비자금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실체를 어떻게 보고 있나.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는 2013년경 2628억원 정도의 추징금을 모두 납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중 '김옥숙 904억원 메모'가 공개되면서 또 다른 비자금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 상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추징금이 2205억원인데, 867억원이 미납상태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숨겨진 비자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필요한 가장 시급한 조치는? 전직 대통령 두 명은 사망했고, 일가가 보유한 재산이 어떤 자금으로 형성됐는가를 되짚어보면 어느 정도 비자금의 실체가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다수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이지만, 법적인 근거 없이 여론에 의해서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법적인 근거에 의해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독립몰수제를 발의한 건가. 이 법이 비자금 환수에 도움이 될 수 있나. 이 법은 전직 두 대통령의 비자금을 환수하려는 목적으로만 발의한 건 아니지만, 그런 취지도 포함해서 검토하고 있다. 형법 제49조에 의하면 범죄 혐의자 또는 범죄자를 처벌해야만 범죄 수익도 추징할 수 있다.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면 범죄 수익이 눈앞에 있어도 환수하지 못한다. 공소시효 만료, 해외 도피 등의 경우에도 특정 요건을 갖추면 범죄 수익을 몰수할 수 있다는 별도 규정을 두는 것이 독립몰수제의 취지다.
지금 독립몰수제를 발의한 이유는? 독립몰수제는 미국, 독일 등 해외에서도 운영하고 있다. 국제기구에서도 권고하고 있어서 우리도 검토할 시점이 됐다. 독립몰수제는 N번방 사건, 온라인 도박, 보이스피싱 등 우리나라에서 급증하는 범죄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다변화하는 범죄 양상에 맞춰서 형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해야 범죄 수익을 환수하고 피해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
법 통과 전망은 어떻게 보고 있나. 독립몰수제만으로는 신군부 비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 전직 두 대통령에 대한 소급적용이 가능한 야당 법안을 같이 검토해서 통과시키면 신군부 비자금에 대한 몰수 근거도 만들 수 있고, 범죄자를 특정할 수 없는 미래의 범죄에 대한 처벌 근거도 마련된다. 어쨌든 독립몰수제가 기본이 되어야 하고, 범죄 수익에 대해선 국가가 끝까지 추적해서 반드시 몰수한다는 엄벌주의에 여야 간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다. 독립몰수제가 국회에서 논의된 지도 수년이 흘렀고,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야당과 함께 논의해서 통과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해보려고 한다.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