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세희 기자]4·7 재보궐 선거 이후 여당 지도부가 사실상 공백 상태에 놓이면서 굵직한 경제정책 발표가 줄줄이 뒤로 미뤄지고 있다. 시장은 시시각각 급변하는데 당정은 신속한 협의를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 등 경제 부처에 따르면 가계부채 관리 방안,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 방안, 종부세·재산세 등 부동산 규제 완화, K-반도체 벨트 전략 등의 일정은 당초 발표시점에서 대부분 내달 2일 여당 대표 선출 이후로 미뤄지는 분위기다. 가계부채 관리 방안은 당초 3월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LH 사태’가 불거지면서 4월로 한 차례 미뤄졌고, 당 지도부가 보궐선거 패배 책임으로 사퇴한 후 5월로 다시 늦춰졌다. LH 혁신 방안은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3월 말에서 4월 초 발표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정 총리 퇴임 이후 뒤로 밀렸다. 부동산세제 완화, 가상자산 규제, 반도체 전략 등 시급한 현안은 논의 자체가 지지부진하다.
일부 정책은 여당 내에서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것도 있다. 대출 완화 등 일부 실수요자들에 대해 금융 규제를 완화하기로 당정이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당대표 후보들의 견해 차는 여전히 크다. 송영길 후보는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90%까지 확대하겠다"고 한 반면, 홍영표 후보는 "LTV를 90%까지 완화하면 부동산 가격 폭등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정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당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정책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 결정의 부재는 시장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폭은 10주 만에 다시 커졌다. 보궐선거가 있던 이달 첫째주엔 0.05%까지 둔화됐는데, 둘째주엔 가팔라졌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매매가격이 다시 오르면서 부동산 시장이 매우 불안한 상황"이라며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은 기존에 발표한 세제 강화를 뒤집는 것이어서 당이 주도하는 상황"이라며 "여당 입김이 세지는 상황에서 당대표가 누가 되는지에 따라 대책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에선 총리 자리도 대행체제여서 고위 당정 조율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현안마다 주무부처가 있지만, 총리가 최종적으로 당과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밝혔다.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종부세를 완화해 주는 방법론에 따라 집을 살지 팔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반도체 전략과 관련해선 "구체적인 세제 혜택이 발표돼야 이에 따른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며 "지금 상황은 경제 주체들이 아무런 판단을 못 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여당이 대부분의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상 2주 동안 행정 공백이 발생할 것으로 봐야 한다"며 "시장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바로 정책적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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